대한민국 게임 산업은 지난 10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그 성과는 단지 숫자와 매출에 국한되지 않는다. 게임은 이제 'BM 중심 상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이자 팬덤 산업, 더 나아가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창작물로 진화하고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게임와이는 그간의 흐름을 되짚는 데서 나아가, 향후 국내 게임 시장을 주도할 11가지 주요 트렌드를 전망한다. 이들 트렌드는 과거의 변화를 밑거름 삼아 앞으로의 10년을 설명해줄 중요한 신호들이다.

 


#01. 스팀으로 간 K-게임: 탈모바일 시대의 신전략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퍼스트 디센던트, 스텔라 블레이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퍼스트 디센던트, 스텔라 블레이드

 

국내 게임 산업의 중심축이 모바일에서 스팀·콘솔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크로노 오디세이, 블소 NEO 등 최근 들려온 소식 뿐만 아니라 이미 흥행에 성공한 '스텔라 블레이드',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퍼스트 디센던트' 등은 개발 초기부터 PC·콘솔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고, 이는 단순한 플랫폼 다변화가 아니라 게임 설계 철학의 변화를 의미한다. 모바일의 반복형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몰입감 있고 자율적인 게임플레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력 기반의 글로벌 확장, 플랫폼 종속성 탈피, 브랜드 경쟁력 확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산업 전반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02. 철학으로 무장한 개발사: 팬덤이 회사를 움직인다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 /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 /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시프트업은 IR 자료에서 '지휘관 여러분과 함께한 성과'를 명시했다. 이는 투자자보다 팬덤을 우선시하는 경영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단기 수익보다는 충성도 높은 유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 IP 축적 전략이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펄어비스, 민트로켓, 스마일게이트 RPG 등에서도 유사하게 관찰된다. 이른바 '철학 있는 개발사'는 게임성, 내러티브, 미적 감수성 등에서 분명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팬덤 중심의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03. 게임은 이제 작품이다: 과금형 구조를 넘어

 'P의 거짓' /네오위즈
 'P의 거짓' /네오위즈

 

2021년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기점으로 유저와 개발자 모두 게임 본연의 재미와 완성도, 예술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게임다운 게임’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콘텐츠 중심 비즈니스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 스텔라 블레이드는 각각 다른 장르임에도 게임성 중심 설계를 통해 글로벌 평단과 시장에서 동시다발적 성공을 거뒀다. 더 이상 'BM이 먼저'가 아니라, '게임이 먼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04. 게임다운 게임의 귀환: 정공법으로 가는 길

스텔라 블레이드 / 시프트업
스텔라 블레이드 / 시프트업

 

이용자는 똑똑해졌다. VIP 유저에게 의존하는 과금 설계, 경쟁 유도형 P2W 구조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신 한 번의 구매로 많은 유저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는 패키지형 모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정공법’으로 불리는 콘텐츠 중심 수익 구조이며,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해외 인디 게임 발라트로나 스타듀밸리 등의 사례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공정하고 명확한 구조, '내가 원하는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소비 인식의 변화가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05. 서브컬처의 대중화: '지갑을 여는' 문화로 진화하다

원신 / 호요버스
원신 / 호요버스

 

과거에는 '오타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서브컬처 게임이 이제는 대중적 장르로 부상하고 있다. 원신을 시작으로 블루 아카이브, 니케, 붕괴: 스타레일 등은 서브컬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완성도와 접근성으로 광범위한 유저층을 흡수하고 있다. 수집형 RPG의 매력을 극대화한 캐릭터 중심 설계, 뛰어난 일러스트와 음성 연기, 감정적 서사는 단순 소비가 아닌 애정의 대상으로서 게임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는 게임을 '갖고 싶은 콘텐츠'로 탈바꿈시키는 현상이다.

 


#06. 경량급 챔피언의 반란: 작지만 강한 게임의 시대

 

‘1인 개발’, ‘픽셀 그래픽’, ‘도트 감성’. 이제는 단순한 미완의 대체물이 아닌, 하나의 창작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언더테일, 할로우 나이트, 발라트로, 스컬, 산나비 등은 AAA의 반대편에서 탄생했지만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기획력’만으로도 세계를 사로잡았다. 스트리밍과 커뮤니티를 통한 입소문 구조, 밈화된 콘텐츠 전파 방식은 경량급 게임을 주류 문화로 이끈 동력이 됐다. 이는 창작 생태계의 다양성과 저변 확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07. AI 기반 게임 시스템의 고도화

인조이 / 크래프톤
인조이 / 크래프톤

 

AI 기술이 게임 내 시스템 요소로 본격 활용되기 시작했다. 크래프톤의 '인조이'는 NPC가 유저 감정에 반응하고, 기억을 축적하며, 자율적 행동을 통해 이야기 전개를 유도하는 구조를 구현했다. 이처럼 AI는 단순한 적 또는 연출 도구가 아닌, '함께 사는 존재'로서 게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AI 기반 서사, AI 사용자 테스트, 생성형 아트 연계 등도 향후 주요 개발 도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08. 게임사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

 

유저들은 게임 하나만이 아니라, 그 게임을 만든 개발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기반으로 소비를 결정한다. '민트로켓이 만든 차기작이라면 기대할 만하다', '시프트업은 퀄리티를 보장한다'는 말은 개발사가 브랜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게임 산업이 단발성 콘텐츠 제공자에서 장기 팬덤 기반 브랜드로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임 산업은 과거 게임별 마케팅 중심에서, 이제는 개발사 정체성과 방향성을 함께 소비하는 구조로 이행 중이다.

 


#09. 멀티스튜디오 체제와 제작 방식의 진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이용자인만큼, 이용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출처 민트로켓 공식 유튜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이용자인만큼, 이용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출처 민트로켓 공식 유튜브 

 

하나의 메가 히트작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리스크가 크다. 넥슨은 민트로켓, 데브캣, 넥슨게임즈 등 다중 스튜디오 체제를 통해 장르·타깃·스케일별 제작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하고 있다. 펄어비스 또한 검은사막 이외 차기작을 위해 멀티 개발 조직을 유지 중이다. 이는 콘텐츠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다양한 실험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로, 대형 게임사뿐 아니라 중소형 스튜디오에게도 확산되고 있는 제작 방식이다.

 


#10. 게임의 사회성 수용: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

 ‘산나비’ /네오위즈
 ‘산나비’ /네오위즈

 

게임은 이제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매체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산나비’는 픽셀 플랫폼 액션이라는 장르적 한계 속에서도 사회적 은유와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동시에 구현해냈다. 이용자 역시 이러한 서사적 진정성과 세계관 메시지를 주목하고, 이에 반응하고 있다. 앞으로 게임은 더 자주, 더 정제된 방식으로 동시대의 고민을 담아내는 문화 콘텐츠가 될 것이다.

 


#11. K-콘텐츠로서의 게임: 문화 수출의 최전선

배틀그라운드 /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 크래프톤

 

K-pop, K-드라마, K-영화의 흐름에 이어, 이제 K-게임이 문화 콘텐츠 수출의 정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스텔라 블레이드는 한국 게임이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작품 성공을 넘어, 한국 게임이 세계 게임 시장의 문법 안에서 경쟁 가능한 문화 콘텐츠임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이제 '한국 게임'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 브랜드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게임 산업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빠른 수익을 위한 익숙한 선택지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 관점에서 콘텐츠의 본질과 브랜드를 가꿔갈 것인가. 게임 산업의 미래는 어느 한 방향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11가지의 트렌드는 그 복잡한 미래의 윤곽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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