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애니메이션과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한 일본 IP(지적재산권)는 한국 게임업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져 왔다. 니어, 강철의 연금술사, 블랙클로버 등 누구나 아는 유명 IP들이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되며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 뒤에 숨겨진 '독'이 한국 게임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IP 게임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참담하다. 스퀘어 에닉스의 '니어 리인카네이션'은 전 세계적인 기대를 모으며 출시됐지만, 3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고품질 3D 그래픽과 독특한 연출로 호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에 실패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모바일'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을 보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혼의 유대'도 2023년 글로벌 서비스 종료를 발표하며, 대형 일본 IP의 상업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최근 일본 IP를 활용한 게임을 출시한 중견 게임사의 실적표.
최근 일본 IP를 활용한 게임을 출시한 중견 게임사의 실적표.

 

이들 게임의 실패 뒤에는 일본 IP 홀더들의 과도한 간섭이 자리잡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본 IP와의 협업 과정에서 도트 단위로 지적한다.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검수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바뀐다"며 "이전에는 OK였던 것도 '다시 보니 아니다, 다 바꿔라' 하는 것이 일본 IP 검수 기준"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B사의 B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개발진은 "IP 홀더인 원작자의 검수와 밸런싱 때문에 원작 메타 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 IP 홀더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하기 때문에, 게임 메타 조정이 필요한 게임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동영상의 경우 1초 단위로 검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제미나이
/제미나이

 

이는 단순한 품질 관리를 넘어선 과도한 간섭이다. 게임의 핵심인 재미와 밸런스보다 원작의 형식적 재현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게임으로서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N사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기존 IP를 라이선싱하는 대신, 일본의 대형 퍼블리셔와 함께 오리지널 IP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N사 관계자는 "오리지널 IP를 일본 퍼블리셔와 함께 만들어가는 형태"라며 "그래서 게임에 맞게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자유도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 특유의 세세한 간섭을 피하면서도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도쿄게임쇼 2025
도쿄게임쇼 2025

 

일본 IP의 문제는 단순히 까다로운 검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높은 계약비용, 복잡한 수익 분배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 개발사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다.

게임은 단순한 IP의 재현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다. 원작의 충실한 재현도 중요하지만,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몰입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 IP 시스템은 이런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한국 게임업계가 일본 IP의 화려한 외관에만 현혹되어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더 많은 게임사들이 '니어 리인카네이션'과 '강철의 연금술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일본 IP라는 독이 든 성배를 계속 마실 것인가, 아니면 N사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답은 이미 시장이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게임와이(Game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