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14 개발팀 “게임 플레이가 먼저… '픽토맨서'는 그렇게 태어났다”
•픽토멘서, 게임 플레이 경험을 최우선으로 두고 제작 •전투팀의 설계를 기반으로 캐릭터성과 사건 구조를 입체적으로 구축 •플레이 경험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디렉션의 핵심
2025년 G-CON의 마지막 컨퍼런스는 ‘파이널 판타지 XIV(파판 14)’ 개발팀이었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 그리고 시니어 스토리 디자이너 오다 켄지가 참석해 약 100분 동안 세계관과 스토리, 게임 메커닉이 어떻게 하나의 직업을 완성하는가를 상세히 공개했다.
관객이 가득 찬 가운데 요시다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많이 와주셔서 긴장된다.”고 말을 열었다. 오다는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었다.
두 연사는 먼저 손을 들어보게 하며 현장 분위기를 파악했다. 게임 업계 종사자, 지망생, 디자이너·아티스트·엔지니어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했고, 파판 시리즈를 플레이해본 이도 상당수였다. 요시다는 “'파이널 판타지 14'의 이야기를 하려면 이것이 어떤 게임인지부터 공유해야 한다”며 기본 설명부터 차근히 풀었다.
◇ 파판14는 플레이 경험이 우선, 스토리보다 게임 메커닉이 먼저 결정되는 구조
강연 초반, 요시다는 신박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스토리나 텍스트를 연타해서 넘기는 사람?” 제법 많은 청중들이 손을 들었다. 그는 “스토리를 건너뛰는 사람도 많지만, 그럼에도 개발자가 왜 세계관과 이야기를 만드는지 오늘 설명해보겠다.”고 말했다.
오다에 따르면 파판14에서는 ‘게임 메커닉’이 먼저 결정된다. 그는 “플레이 경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재미와 감각을 줄 수 있는지가 먼저 결정된다”고 말했다. 즉 파판14 개발팀은 스토리가 아닌 ‘플레이’에서 출발한다. 이는 흔히 ‘파이널 판타지는 스토리 기반 MMORPG’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의외의 구조일 수 있다. 하지만 재미·전투감·몰입감 같은 경험을 최우선으로 설계하고, 그 뒤에 로어와 스토리가 붙는 형태를 유지한다.
◇ 신규 직업 개발의 첫 질문: “이번 무기는 무엇인가?”
확장팩마다 신규 직업을 추가해야 하는 '파이널 판타지 14' 팀은 이제 22개의 직업을 보유하고 있다. 요시다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 무기 아이디어가 거의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규 직업 개발은 언제나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번 직업은 어떤 무기를 들게 할 것인가?” 파판14는 무기를 바꾸면 잡이 바뀌는 구조라 무기 설정이 곧 직업의 본질을 규정한다. 따라서 무기가 무엇인지, 그 무기가 어떤 플레이 경험을 줄 수 있는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전투팀이 먼저 게임적 방향성을 잡고, 이후 그 정보가 로어·스토리팀으로 전달된다.
◇ '픽토맨서(Pictomancer)'의 탄생 : 그림을 그려 실체화하는 마법사
이번 확장팩 ‘황금의 레거시(7.0)’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신규 잡은 '픽토멘서(ピクトマンサー)'다. 요시다는 픽토맨서를 이렇게 소개했다. “붓으로 그림을 그려 마법을 만든다.” 하지만 기획팀은 단순히 '그림에서 기술 발동'이 반복되는 구조가 되지 않도록 세부 메커닉을 설계했다. 예를 들면 연속 사용 시 색이 변하는 시스템, 이전에 그린 그림과 새 그림이 조합되는 연계 공격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판타지를 실제 게임 플레이 감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 로어팀의 첫 번째 고민: ‘살아 있는 인물상을 만든다’
오다 팀은 '픽토맨서'라는 새로운 잡을 단순한 ‘그림 전투 직업’으로 두지 않았다. 그는 먼저 이 잡을 사용하는 인물의 생동감을 설정했다. 사람을 돕는 여행을 이어가는 ‘루카’라는 캐릭터 성격, 모그리 등 친숙한 마스코트를 함께 등장시켜 감정적 연결을 강화, 영웅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 즉 ‘중요 인물을 구하는 장면’ 삽입, 전체 콘셉트로 '좋아하는 그림 속에 갇힌다.'는 문구 설정 등이 있다. 이 콘셉트 는 오다가 어린 시절 들었던 NHK의 동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그는 “노래 끝에 주인공이 그림 속에 갇혀버리는 장면이 이상하게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 픽토맨서 직업 퀘스트: ‘그림 속 친구를 구하라’
오다는 이번 강연에서 '픽토맨서' 직업 퀘스트의 전체 구조를 거의 그대로 공개했다. 이야기는 행방불명된 친구 ‘벨’을 찾는 모그리 캐릭터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픽토맨서의 기술을 이어받아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고, 결국 벨이 ‘좋아하는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6'에 등장했던 ‘그림에 깃든 존재’를 오마주한 적과 싸우도록 구성했다. 오다는 이를 두고 “시리즈의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파판 14'만의 형태로 재해석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요시다 역시 “게임 메커닉팀과 로어팀이 서로의 작업에 기여하며 하나의 잡을 완성한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 '파이널 판타지 14'를 되살린 결단: ‘신생 파판14’의 시작
요시다는 자신이 '파판 14' 프로젝트에 투입됐던 초창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공식 서비스 직후 '파이널 판타지 14'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완전히 붕괴했다는 반응을 보며 처음 문제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회사 지시로 한 달 반가량 집중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발견된 문제 목록만 약 1만 개로 그중 절반도 고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온라인 게임의 핵심인 서버 구조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이 상태로는 2천 개 정도밖에 고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결국 회사는 두 가지 선택지를 논의했다. 몇 년 운영하다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으로.
◇ 완전히 새로 만드는 ‘신생 파판 14’ 개발
요시다는 넘버링 타이틀인 '파이널 판타지 14'를 이 상태로 끝낼 수 없다며 두 번째 선택지를 강하게 주장했고, 이 결정이 훗날 '파판 14'를 세계적 성공작으로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전임자가 쌓아온 기준을 지키는 것이 먼저 : Q&A에서 한 참가자가 “디렉터가 교체될 때 방향성은 어떻게 이어가야 하느냐.”고 묻자, 요시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플레이어에게는 이것이 모두 하나의 세계다.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퀄리티 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단순한 인수인계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 서비스 MMORPG의 핵심 운영 원칙에 가깝다. 요시다는 “그 후에야 새로운 디렉터의 장점을 더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했다.
◇ '스토리'는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야
스토리 작업의 난이도를 묻는 질문에 요시다는 “스토리는 누가 썼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모델링이나 그래픽처럼 제작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야와 달리, 텍스트와 구조, 대사는 라이터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파이널 판타지 14' 스토리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오다와 이시카와를 '가장 뛰어난 스토리 라이터들'이라고 언급하며, 이들이 있기 때문에 무게감 있는 시나리오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 3년 만에 돌아온 지스타… “한국 팬을 꼭 만나고 싶었다”
오다는 마지막 인사에서 “3년 연속 지스타 초대를 받았지만 일정 때문에 오지 못했다”며, 올해는 지스타가 끝난 직후 내년 스케줄을 미리 조정해 반드시 참석했다고 말했다. 요시다는 '앞으로도 계속 파이널 판타지 14'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한국 팬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며 무대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