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드래곤퀘스트 40주년, 한국에서 열린 호리이 유지 특별 대담
부산 벡스코에서 지스타 기간에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는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의 창시자이자 아머 프로젝트(Armor Project) 대표'호리이 유지'가 직접 참석해, 초기 개발 배경부터 최신 리메이크 제작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게임 개발 방향성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호리이는 한국에서의 강연이 거의 20년 만이라고 밝히며 “정말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인사했다.
사회자는 “드래곤퀘스트가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열었다. 호리이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산업·문화 공헌자에게 수여되는 '자수포장(紫綬褒章)’을 게임 디자이너 최초로 수상한 소감도 전했다. 그는 “예전엔 게임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때가 많았는데, 이제 국가는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공식 인정했다.”며 “게임 크리에이터가 표창을 받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 드래곤퀘스트 탄생의 배경
드래곤퀘스트의 첫 작품이 출시된 것은 1986년이다. 당시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는 액션과 스포츠 장르가 중심이었고, RPG는 PC에서 ‘매니아만 하는 게임’으로 여겨졌다. 그는 “패밀리컴퓨터(패미컴)가 아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이 플랫폼에 RPG를 올리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문제는 당시 64KB밖에 되지 않는 극도의 제한된 메모리였다. 그는 “지금 스마트폰 사진 한 장의 몇만 분의 일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안에 스토리, 그래픽, 시스템을 모두 넣는 작업은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호리이 대표는 원래 만화가 지망생이었으며, 만화 원작과 라이터 일을 하다가 컴퓨터와 만나 게임 개발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는 일방향 매체지만, 컴퓨터는 인터랙티브다. 이 구조를 활용해 ‘읽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설계
첫 드래곤퀘스트에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장치가 있었다. 바로 플레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고, 게임이 그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이다. “TV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경험은 당시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됐다. 또한 RPG의 핵심 재미를 '경험치를 통해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초반 마을에서 ‘마왕의 성’이 보이도록 설계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저기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동기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 JRPG(Japanese Role-Playing Game)의 확산과 다른 작품들에 대한 시선
드래곤퀘스트 이후 일본 RPG 시장은 크게 확장됐다. 파이널 판타지, 여러 신작 RPG가 잇따라 등장했다. 이에 대해 호리이 대표는 “라이벌도 있었지만 즐거웠다. 나도 '파이널 판타지'나 '젤다'를 열심히 플레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게임을 다른 개발자가 해석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고 했다. “내가 만든 건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남이 만든 게임이 더 신선했다.”고 설명했다.
◇ 캐릭터 중심 이야기로의 전환
사회자가 기억에 남는 ‘전환점’을 묻자 그는 드래곤퀘스트 IV를 언급했다. III가 일본 사회에서 폭발적인 현상이 되었던 만큼 후속작 제작에는 엄청난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구조였다. 주인공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시점을 다루며 세계를 확장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아리나', '마냐' 같은 인물들은 지금도 시리즈를 상징하는 인기 캐릭터로 남아 있다.
◇ 온라인 도전, 그리고 플랫폼 철학
'드래곤퀘스트 X'의 온라인화도 당시 큰 화제였다. 호리이 대표는 “정말 많이 고민했다. 온라인 게임의 허들은 높았지만, 개발팀이 ‘넘버링이어야 한다’고 강하게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플레이될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에는 가장 보급률 높은 플랫폼에 내고자하는 의사를 여러번 밝혀왔는데, 이 역시 한 사람이라도 더 즐기게 하려는 철학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멀티 플랫폼 시대라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 HD-2D 리메이크의 의도
최근 발표된 '드래곤퀘스트 III HD-2D 리메이크'와, 이어진 I·II 리메이크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호리이 대표는 원작 1은 당시 매우 단순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III를 먼저 즐긴 뒤 1을 하면 분명히 ‘빈약하다’고 느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래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부풀려진 모습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억을 정확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상적인 ‘감각’을 재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 드래곤퀘스트 VII Reimagined
내년 2월 출시 예정인 '드래곤퀘스트 VII Reimagined'는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호리이 대표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어오면서 시리즈 처음으로 CD-ROM을 사용해 용량 제약이 사라졌다. 그래서 욕심을 많이 냈고, 그만큼 난도도 높았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당시 ‘석판 찾기’에서 많은 유저가 이탈했던 부분을 재조정해, 훨씬 접근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 창작 과정과 작업 방식
호리이 대표는 게임 제작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반면 실제 개발은 “산을 오르는 과정처럼 힘들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큰 보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대부분의 대사를 직접 썼지만, 최근에는 팀 규모가 커져 전체 검수 위주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시리즈 I·II에는 직접 대사를 다시 썼고,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창작 리듬에 대해 묻자 “예전에는 밤에 많이 썼다. 집중이 잘 됐다. 지금도 마감 직전에 몰아 붙이는 스타일은 변함없다.”고 웃었다.
◇ 팬과의 소통, 시대의 변화 그리고 '유머'와 '장난기'의 역할
SNS와 게임 방송의 시대에 대해 “예전엔 엽서로만 의견을 받았지만 지금은 X(트위터)나 게임 방송으로 직접 반응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게임을 방송에서 보는 건 묘한 기분인데, 플레이어들이 각자 만든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고 했다. 드래곤퀘스트의 대사와 이벤트 곳곳에는 가벼운 장난과 유머가 들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밝은 장면이 있어야 무거운 장면도 살아난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감정의 리듬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선택지를 넣어 플레이어의 성취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그의 기본 철학이라고 밝혔다.
◇ 인공지능, VR, 차세대 기술에 대한 시각
후반부에서 호리이 대표는 AI의 발전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Chat GPT를 사용해보고 “게임에 접목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미스터리나 대화형 게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레이어가 AI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서를 찾아가는 구조를 예로 들었다. 또한 그는 VR 기술의 발전 가능성도 높게 보며 “지금은 장비 자체가 불편하지만, 더 가벼워지면 게임이 화면을 넘어서 현실로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게임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만나 결혼한 사람들도 있다.”며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도 언급했다.
◇ “인생은 RPG다”
호리이 대표는 오랫동안 '인생은 RPG'라는 말을 해왔다. 그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때로는 힘든 순간도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다. 레벨업하고 경험치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다.” 그는 행복도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그 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 개발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마지막으로 그는 게임 개발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는 모두 걸작이다. 하지만 그것을 형태로 꺼내는 과정이 가장 어렵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는다. 그래도 반드시 밖으로 꺼내봐야 한다.” 그는 자신의 초기 경험을 이야기하며, “처음엔 베이직 커멘드 네 개만 알았다. 그래도 만들려고 하니까 다음 명령을 배워야 했고, 그게 곧 레벨업이었다”고 말했다. “조금씩 시도하고, 가능하면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서 확장해 나가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