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W' 출시 임박...되돌아보는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
엔씨소프트가 신작 모바일 MMORPG '리니지W’ 출시를 올 11월로 확정지었다. ‘리니지W’는 엔씨의 글로벌 타이틀로 ‘리니지’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다. ‘리니지M‘ 이후 4년의 개발 기간을 거쳤다.
엔씨는 ‘리니지’의 핵심인 PvP를 글로벌로 확장해 시리즈의 전투 감성을 더욱 크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이용자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글로벌 원 빌드로 서비스되며 AI번역 기술을 도입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엔씨가 이렇게 글로벌 이용자의 소통에 적극적인 것은 글로벌 이용자들끼리 쟁을 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리니지의 근간이 '쟁(爭)'이고, 이 코드를 글로벌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단순 혈맹 간 PvP만을 지원했을 때도 온라인 게임 역사상 전대미문의 전쟁인 ‘바츠 해방전쟁’이 발발한 바 있다. 리니지가 글로벌로 그 시장을 넓혀 나간다면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사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존 리니지 시리즈 최대 최악의 전쟁이라 불리는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되짚어봤다.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과 독재가 있었다. 21세기에 이르러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면서 이 가상공간에서도 똑같은 독재와 전쟁이 일어났다.
게임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 ‘자유’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게임 월드 내에서 약 240년 동안 펼쳐진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이 그중 하나다. 이는 현재 유행하는 ‘메타버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현실의 모습이 가상공간에 투영되어 간접 경험을 하게 된 첫 유명 사례로 볼 수 있다.
바츠 해방전쟁은 현실 시간으로 장장 4년간 연인원 20만 명이 참가한 초거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지난 2004년 리니지2 '바츠' 서버에서 지위를 이용해 시스템을 악용, 서버를 장악한 'DK혈맹'과 폭정을 견디다 못한 서버 내 중소 혈맹 연합에 더해 다른 서버의 유저들이 힘을 보태면서 발생한 전쟁이다. 모든 서버에서 도움을 주러 왔기 때문에 연간 참여인원만 약 2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온라인 게임의 전쟁들 중 보기 드물게 거대한 규모로 일어난 전쟁이었고, 유례없는 게임 속 민주투쟁이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커뮤니티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형성에 대한 사례로 제시되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온라인 게임의 사회성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게임업계에서 적극적 투자에 나서고 있는 ‘메타버스’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지녔다. 이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형성’ 사례는 국내에서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또한 역사에 실제로 기록되어있는 혁명인 프랑스 혁명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전개를 가지고 있다. 장기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낀 민중이 봉기를 일으켜 탈환에 성공하지만 혁명을 주도한 세력의 이권다툼, 내분, 부패로 인해 구체제로 다시 복귀하는 것까지 일치한다.
D.K (Dragon Knights) 혈맹은 리니지에서 '강력한 혈맹'의 대명사였다. 리니지 1에서 데포로쥬 서버의 모든 성을 공성전에서 점령하고 몇 년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원성을 사는 혈맹이기도 했는데 높은 세금을 책정하고 사냥터 통제를 실시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리니지1 에서부터 ‘사냥터 통제’, ‘보스 몬스터 독식’ 등으로 악명을 떨친 DK 혈맹은 리니지2 오픈 베타가 시작되자마자 당시 최대 서버였던 ‘바츠’ 서버를 장악했다.
그리고 2003년 9월 14일, 당시 서버 내 주류 혈맹이었던 '제네시스', '신의 기사단'과 힘을 합친 뒤 정식으로 동맹 협정을 맺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해방전쟁 당시 리니지2의 DK길드는 리니지1의 DK길드와는 별개의 길드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렇게 바츠 서버에서는 3대 혈맹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3대 혈맹이 서버를 장악하면서, 이는 곧 ‘DK 연합’ 이라는 하나의 독재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일반 플레이어에 대한 억압과 통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사냥터에 다른 플레이어의 접근을 막는 '통제령'은, 곧 그들의 명령을 듣지 않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차별로 학살하는 ‘척살령’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들이 통제하는 주요 사냥터는 3대 혈맹에 의해 피로 물들게 된다.
그들은 바츠 서버의 모든 영지를 장악하고 사냥터에 대한 통제와 함께 오토 프로그램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기 시작한다.
2004년 DK혈맹은 모든 영지의 세율을 10%에서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상점에서 판매되는 아이템 등 해당 영지의 경제적 이익은 그 영지를 소유한 혈맹의 세금이 되는데 이는 바츠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고 바츠섭의 전 플레이어는 반발하기 시작한다.
2004년 5월 9일. DK연합에 반기를 들어오던 '붉은 혁명' 혈맹은 DK연합이 차지하고 있던 기란성을 점령한 뒤 세율을 없애겠다고 선언한다. 곧 이어서 DK 혈맹의 보복 공성으로 붉은 혁명 혈맹은 기란성을 다시 잃게 되지만, 이는 바츠 서버에서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일반 유저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동안 중립을 고수하던 여러 중소 혈맹들이 나서기 시작해 ‘反DK 바츠 연합군, 올포원(All For One)’이 결성된다.
DK 연합의 통제로 정상적인 레벨 업을 할 수 없었던 중소 혈맹들의 상당수가 저 레벨이었다. 때문에 이들 바츠 연합군 올포원은 일방적으로 DK혈맹에 의해 도륙 당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일방적인 학살이 리니지 유저들의 정의감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거기에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독립선언문을 연상케 하는 호소문이 올라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커뮤니티는 들끓기 시작했고 소식을 들은 전 서버의 유저들은 바츠 서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DK 혈맹 타도를 위해 초보자 캐릭터를 만들어 거대 혈맹 연합에 맞서기 시작했다.
당시 리니지 2에서는 캐릭터 서버 이전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 서버 유저들은 바츠 서버에서 신규 캐릭터로 DK 연합과 맞서야 했다. 이때 그들이 착용한 초보자 장비가 내복을 연상케 해 이들을 '내복단'이라고 불렀다.
내복단은 착용한 아이템이 스펙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인해전술 및 인간 바리케이트를 쌓는 전략으로 DK 혈맹을 압박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더라도 DK 혈맹원 하나에 수십 명이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DK를 향한 점점 악화하는 여론과 내복단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DK 혈맹은 전쟁을 지속했다. 이권을 놓을 수 없었던 것. 그럼에도 이 행태를 모든 유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합군의 세력은 점점 증가했다.
2004년 6월, 3대 혈맹의 하나인 제네시스 혈맹이 이권 분쟁을 계기로 DK 혈맹과 동맹을 파기하고 연합군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32개 혈맹으로 불어난 연합군이 5개의 요충지 중 하나인 오렌성을 차지한다. 그리고 2004년 7월, 드디어 DK혈맹이 장악하고 있던 리니지2 최대의 성인 ‘아덴성’ 공성전이 시작됐다.
당시 리니지 2는 공성전이 시작되기 24시간 전 양쪽 진영이 '공성 등록' 혹은 '수성 등록'을 신청해야했다. 때문에 연합군이 DK혈맹의 아덴성을 공성하느냐, 연합군의 오렌성을 수성하느냐에 대해서 치열한 눈치 싸움과 심리전이 벌어졌다.
등록 마감 10분 전, 아덴성에 공성 등록했던 제네시스 혈맹을 제외한 모든 연합군은 오렌성 수성 등록을 했다. 잠시 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 혈맹마저 아덴성 공성 등록을 포기하자 DK 혈맹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렌성으로 진군했다.
그 틈을 노려 매복하고 있었던 제네시스 혈맹과 연합군은 아덴성으로 달려가 마감 3분 전 공성 등록을 신청한다.
당황한 DK 연합은 이미 늦어버린 아덴성 수성 등록을 포기하고 오렌성 공성 등록을 유지하게 된다. 이때, DK연합의 아덴성 공성 등록 혈맹은 26개, 수성 등록 혈맹은 단 1개였다. 이로써 첫 번째 전략은 성공했고, 연합군은 수적 우위에 서게 된다.
공성전 당일, 바츠 연합군은 DK 혈명의 아덴성을 공성하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수적으로 우위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는 리니지2 최초 ‘만렙’ 달성자이자 DK혈맹의 고문 ‘아키러스’의 뛰어난 전략 때문이었다.
아키러스의 활약으로 연합군은 공성을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도록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은 대디적 후퇴를 딘헹한다. 연합군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승기를 잡은 DK 연맹은 오렌성으로의 진군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연합군의 전략이었다. 연합군의 별동대가 전장 외곽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
DK혈맹의 대다수가 오렌성으로 간 것을 확인한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바로 공격 명령을 내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렌성문을 공격하던 DK 혈맹은 오렌성을 정복하기 직전에 아덴성이 공격받는 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에 당황한 DK혈맹은 다시금 아덴성으로 회군을 시도했다.
그러나 DK혈맹이 오렌성의 성문에서 만난 것은 그들의 폭정에 분노한 수백 명의 내복단이었다. 이들은 입구를 몸으로 봉쇄하고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쳐가며 DK혈맹원들의 아덴성 진군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DK연합군은 앞을 가로막는 내복단을 죽여가면서 마을을 벗어나려 하였으나 내복단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렇게 DK혈맹이 내복단의 인간 바리케이드에 고전하는 사이 마침내 아덴성은 연합군의 손에 넘어간다.
리니지2 최대의 거점 아덴성을 탈환하며 연합군은 물론 전 서버의 리니지 유저가 환호했다. 후에 이 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되었다. 바츠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수천 개의 글에 게시판은 폭발했으며, 심지어 언론에서 바츠 해방전쟁을 기사화했다.
아덴 공성전에서 패배한 DK 혈맹은 기란성, 글루디오성 마저 모두 연합군에 빼앗기고 '오만의 탑' 꼭대기까지 내몰리게 된다.
이 온라인 게임 사상 최대의 역사적 사건은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물론 현재 들어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바츠 해방전쟁’의 배경에는 이권 혈맹들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 행위와 엔씨소프트의 안일한 운영정책, 내복단의 숭고한 민주투쟁이 아닌 개인의 이득을 위한 참전 등 많은 불편한 진실이 존재했지만, 그것 또한 현실에 기반한 메타버스로 볼 수 있겠다.
더불어 바츠 해방 이후 기득권이 된 연합군이 오히려 폭정을 시도하는 아이러니와 내부 불화등이 겹쳐 DK에게 다시 점령당하는 해프닝까지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완벽한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이후 일어나는 2차 바츠 해방전쟁부터는 이권을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일반 온라인 게임의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된 1차 바츠 해방 전쟁의 경우는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가상공간에 투영한 대표적 사례로 자리잡혀있다.
오는 11월, 모두의 걱정 아래 리니지W가 출시된다. 데이터 조각 하나에 울고 웃던 민주투쟁의 감성을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